자연을 벗삼아...^&^*/잔차야그

[스크랩] 자전거는 거짓말을 하지않는다

뜨락에. 2012. 11. 28. 00:18

자전거는 달콤한 사탕발림을 할 줄도 모르고, 듣기 좋은 칭찬을 할 줄도 모르지만, 언제나 진심을 담아 나를 지켜주는 뚝심 있는 친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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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의 만남이 전혀 즐겁지 않을 때가 있다. 이십 년 이상 묵은 이들은 기쁘지 않아도 웃을 수 있고, 마음을 드러내는 일을 이기고 지는 일로 계산하려 하며, 싫어하는 이에게도 상냥하게 구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한번 보자', '밥이나 한번 하지', '나중에 연락해'란 인사를 주고받지만 연락을 하지도, 밥을 먹지도, 따로 보지도 않는 관계들이 늘어난다. 사는 게 팍팍해서 잊은 건 아니다. 실은 애초부터 그럴 맘이 없었다.

죽도록 외로운 날이면, 주위에 마음 털어놓을 사람 하나 없다는 생각에 슬퍼진다. 술에 취한 밤이 되면 핸드폰에 저장된 전화번호 목록을 뒤적이지만, 딱히 전화 걸만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애인이 있어서 외롭고, 애인이 없어서 외롭다. 점점 거슬리는 사람은 많아지고, 끌리는 사람은 적어진다. 조건이 많아지고, 이해심이 적어진다. 관계의 시작보다 끝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시작도 하기 전에 우린 왠지 다를 것 같다는 겁이 늘어나고, 그래도 한번 맞춰보자는 용기는 줄어든다. 나의 나쁜 점은 무던히 넘겨주었으면 하는 기대는 늘어나지만, 상대의 나쁜 점을 모른 척할 여유는 없어진다. 그래서 자꾸만 사람을 만나는 게 어려워진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은 커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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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외롭다고 느끼던 어느 겨울에 연애를 시작했다. 추운 날씨는 연애 초기의 서먹함을 없애고 서로의 거리를 좁히게 해주는 고마운 지원군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토록 소중한 사람이 생겼는데도 여전히 외로운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이 계속되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망설여졌다. 이런 감정들을 솔직히 꺼내 보이는 게 맞는 걸까? 아니면 그래도 네 덕분에 위로가 된다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게 맞는 걸까?

결국, "너만 있으면 돼" 라고 말했지만, 실은 "네가 있어도 난 외로워" 라고도 말하고 싶었다. 불현듯 찾아오는 채워지지 않는 마음들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말은 너무 잔인한 거 같아서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마 그 사람은 알아챘을 것이다. 원래 거짓말이란 게 그러니까 말이다. 굳이 귀로 듣지 않아도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껴지는 무언가로 결국엔 다 들통이 나게 된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든 생각이지만, 그 시절 나는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어서 더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 나를 채워줄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가 내 안에서 자꾸만 커지면서, 내가 사랑했던 것은 이미 제멋대로 커져버린 이상 속의 그였기에 현실 속의 그에게 혼자만의 실망을 반복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다시 겨울이 되었고 나는 또 혼자가 되었다. 야속하기만 한 추운 날씨는 눈치 없는 친구처럼 굳이 되짚어 보지 않아도 될 것들까지 자꾸만 떠올려 곱씹어 보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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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질문을 상대방에게 던지길 좋아한다. 그건 일종의 확인 작업 같은 것인데 자신의 결정이나 상태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구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의 대부분은 답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목적은 '동의'다. 이미 마음속으로는 결정이 내려져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의견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섣불리 충고하려 들다가는 '의'만 상하기 십상이다.

질문은 대개 반어적으로 던져지곤 한다. 예를 들어, "나 남자친구랑 다퉜어, 헤어져버릴까?' 하는 질문을 했다고 해도 대부분은 정말 헤어질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왜 다투었는지를 들어주고, "그 정도는 헤어질 이유가 안돼"라고 말하며 다독거려 줄 상대가 필요할 뿐이다. "나 살찐 거 같지?'라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응 많이 쪘네."라는 답을 바라는 게 아니다. "너는 그렇게 살찌지 않았어"라는 답을 원하는 것이다.

내가 던지는 수많은 나에 관한 질문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결국 내 안에 고집은 빳빳이 세워두고, 속마음과 다른 질문들을 던지며 사람들의 위로와 지지를 받고 싶어하는 내 자신을 본다. 우리는 무엇을 묻고 싶은 것일까? 결국 질문을 하는 이도, 질문을 받는 이도 서로가 원하는 달콤한 거짓말들만을 주고 받으며, 진짜 중요한 것들은 애써 모른 척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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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이란 뭘까? 그게 참 웃기고 미묘한 것 같다. 그 놈의 지긋지긋한 진심이란 것은 오래된 지인에게도 절대 드러나지 않다가 처음 보는 누군가에게 툭툭 터져 나오기도 하고, 내 속에서 곪아 터져 병이 되기도 하고, 조그맣던 것이 크게 부풀어져 당황스럽기도 하다. 우리는 진심을 숨기기에 익숙하고, 진심을 마주하기 겁내기도 하지만, 늘 진심을 외치는 상처투성이 진실 중독자들 같다.

가끔은 내 안의 진심이 유통기한 하루짜리 우유보다 자주 변하기도 해서 그 잘난 진심이라는 게 과연 무엇인지조차 헷갈리기만 한다. 그럴 땐 그냥 자전거를 탄다. 적어도 자전거를 탈 때만큼은 모든 것이 솔직해지는 기분이 든다. 내가 페달을 돌린 딱 그만큼 앞으로 나아가니까, 이것은 아무런 거짓이 없는 오롯한 나라는 생각이 든다. 자전거는 거짓말을 모른다. 달콤한 사탕발림을 할 줄도 모르고, 듣기 좋은 칭찬을 할 줄도 모르지만, 언제나 진심을 담아 나를 지켜주는 뚝심 있는 친구 같다. 자전거를 타는 순간만큼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고 지금 달리는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런 명백하고 깨끗한 순간, 그것은 자전거를 타면서만 느낄 수 있는 나의 진심일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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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보통중년들의 세상사는이야기
글쓴이 : 좋은형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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