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벗삼아...^&^*/잔차야그

[스크랩] 자전거가 있는풍경 (고도원의 아침편지 중 신영길님의 글)

뜨락에. 2006. 6. 19. 13:56

지난 2000년의 역사 속에서 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자전거라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그 관점이 무엇이었는지 뚜렷이 기억은 없으나
내 생각에, 굳이 다른 설명이 필요할까, 싶다.
뭐랄까. 자전거처럼 우리들의 삶에 유용하면서도 친인간적이고 친자연적인 것이 있을까.
그런 생각에서다.

오염을 일으키지 않는 운송도구이면서
구입하는 데나 유지하는 데 많은 돈이 드는 것도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주변과 잘 어울린다.
그 곳이 산길이건 들길이건 강변이건 도시건 간에 자연과 사람이 있는 한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을 구성한다.

사시사철 어느 때라도,
꽃이 피거나 비가 내리거나 낙엽이 지거나 눈발이 흩날리거나
아침이건 저녁이건 어느 때라도 조화를 이룬다.
땅을 짓누르는 것도 아니요 내리 밟는 것도 아니다.
길을 둘둘 말았다가 다시 죽 펴서 제자리에 깔아 놓는다. 흔적도 없다.

겉모양으로 어울리는 것 뿐 아니라 내적으로도 사람을 고무시킨다.
제가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에게 힘을 충전시켜 주는 것이다.
무엇도 흉내 낼 수 없는 빈 바퀴의 마력이다.
텅 빈 은륜으로부터 솟아나는 추진력이 경이롭기만 하다.
페달을 밟으면서 나는 항상 꿈꾼다.
내 텅 빈 머리가 자연의 영감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자전거는 사람의 몸을 엔진으로 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자전거와 사람이 하나가 되어야 제대로 달릴 수 있다.
자전거 위에서 내 몸이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모른다. 자유로워하는지 모른다.
화를 내면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 얼굴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기분이 울적할 때라도 자전거에 오르는 순간 툴툴 털려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내 기억 속의 가장 오래된 자전거는 우체부 아저씨의 자전거였던 것 같다.
멀리에서부터 동네로 들어오는 빨간 자전거를 보노라면 늘 가슴이 뛰었다.
자전거는 반가운 소식이었고 그리움이었다.
한번 만져보려고 자전거 뒤를 졸졸졸 따라 다니다가
우체부 아저씨의 선한 눈과 마주치면 공연히 부끄러워 쩔쩔매곤 했다.

날마다 우리 동네에 들어오는 또 다른 자전거가 있었다.
짐빠이라고 불리던 양조장 자전거였다.
막걸리 통개를 잔뜩 싣고 자갈투성이의 신작로 길을 참 용케도 잘 달려왔다.
그에게서는 늘 땀 냄새가 났다. 술 냄새가 났다.
두꺼운 팔뚝이 무서웠던지 옆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고 늘 멀리에서 훔쳐보곤 했다.

중학생 시절, 멀리에서 오는 아이들은 매일 이십 여리를 통학하는 애들도 있었다.
그들은 주로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나는 그들의 자전거가 부러웠다.
마음 좋은 친구에게서 자전거를 처음 배웠다. 학교 운동장에서였다.
넘어져라. 그렇지 않으면 영영 자전거를 탈 수 없게 된다.
삶의 중요한 원리를 친구에게서 배웠던 것이다.

뒤를 잡아주던 그 친구의 도움 없이 홀로 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에
얼마나 겁이 났으며 또한 얼마나 신이 났는지
깃털처럼 추락할 것 같다가 참새 떼처럼 하늘로 떠오를 것 같은...
내가 지나간 자리에 있던 나무며, 꽃이며 심지어 산까지도 떨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이후로 30여 년 동안 자전거와 멀어졌다.
그러다가 작년 이맘 때 자전거에 대한 열망이 불 일 듯이 솟구치는 것이었다.
아마 그동안 자전거 길이 생기고 자전거 타는 사람이 자주 눈에 띄면서
깊은 곳에 자리하기 시작한 그리움에 마음이 닿게 된 모양이다.
연인을 본 듯이 단숨에 자전거포에 들렀다.

어찌나 자전거 종류가 많은지 한 번에 고르지를 못하고 일주일을 생각했다.
자전거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먼저 정해야했다.
그리고는 결심했다. 자동차와 이별하고 출퇴근을 자전거로 하기로 한 것이다.
집과 회사를 오가는데 각각 50여분씩 걸린다.
이슬이 깨어나지 않은 아침 출근길을 나는 특히 사랑한다.
가슴에 해를 안고 페달을 밟으며 많은 것을 버리고 정리하게 된다.

일보다 더욱 귀한 선물이 있다.
나 살고 있는 도시가 이처럼 아름다운지에 새삼 눈뜨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많은 꽃들이 강변에 피었다가 지는지, 철따라 새가 우짖는지를
보고 듣고 깨닫게 된 것이다.

한 곳에 머물러 설 수 없는 자전거 위에서
가뭇없이 사라져가는 흰 구름을 바라본다.
자전거를 타고 생각하다 보면 내 삶이 가볍게 느껴지는 때가 많다.
문득 구름인 양 느껴지는 때가 있다.
자전거가 내게 속삭이는 것 같다, 바람처럼...

시간의 무게를 느끼지 않으려거든,
멈추지 말고 마냥 굴러라.
취하라. 사랑에 꿈에 시에
빈 바퀴처럼, 빈 바퀴처럼
출처 : 자전거가 있는풍경 (고도원의 아침편지 중 신영길님의 글)
글쓴이 : 재키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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